3월에 공유오피스를 등록하고 출근을 시작한 지 이제 2주 가까이 지났다. 첫 일주일은 정말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보냈는데, 요 며칠 동안 일상의 충만함과 행복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이 달라졌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크게 두 가지가 변했다.
1. 매일 하던 푸시업, 스쿼트 50회씩 하는 루틴이 끝났다.
2. "소요(逍遙)"하는 시간이 사라졌다.
'소요(逍遙)'란 무엇인가
이 두 번째 활동을 표현할 적절한 용어가 없어서 고민했다.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어딘가에 앉아서 평온한 마음으로 나의 삶(과 행복, 만족)에 대해 생각하고 사유하면서 이를 적어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활동이 나의 충만한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에 이 글을 적게 되었다.
이런 활동을 무엇이라 부를까 고민하다가, 고전 『장자』에서 "소요(逍遙)"라는 단어를 빌려쓰기로 했다. 『장자』 첫 편의 제목인 '소요편'에서 "소요"는 "세속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를 누리는 것, 여유롭게 배회하고 노님"을 의미한다. 물리적으로 어딘가를 떠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사고와 생각의 자유를 뜻하는 이 단어가 내가 추구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의 이 활동은 '정신적 소요', 더 나아가 '이를 적어보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겠다.
카페와 소요의 관계
나는 카페 가는 것을 좋아한다. 한국에 있을 때나 여행을 다닐 때도 거의 매일 카페를 찾는다. 생각해보면 특별히 커피를 좋아해서가 아닌데, 왜 카페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알게 모르게 이런 '소요하는' 시간이 나에게 큰 위안과 행복을 주었던 것 같다. 주로 카페에서 이런 '소요의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카페 가는 것을 좋아한다고 느낀 게 아닐까? 사실 장소나 시간, 커피를 마시거나 아니거나, 공간의 만족도 등은 결국 이런 '소요하는 시간'을 얼마나 충실하게 보낼 수 있는지에 영향을 미치고, 잘 소요했을 때 만족도와 충만함이 올라가 '카페에 가는 경험' 자체를 긍정적으로 강화해주었던 듯하다.
소요 시간의 가치
지금까지는 앉아서 일하기 전에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정도로만 적었고, 이런 행동 자체에 별다른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요즘, 이 시간이 그 이상의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소요'하는 시간은 '뻔하고 분명해 보이지만, 생각하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것들'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아래와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 우리 모두 인생을 단 한 번, 지금을 살아가는 존재.
- 타인의 시선보다 나 자신의 행복과 충만함이 중요하다.
- 나를 사랑하고 아끼고 연민하는 마음
- 나는 어떤, 어떻게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지?
누구나 이런 문장들을 보면 동의하고, 그렇게 살고 싶어할 것이다. 사실 너무 뻔한 말들이라 굳이 이를 매일 생각하고 적어야 하나 싶은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요 며칠 동안 느낀 것은, 일상에 치이다 보면 - 다른 말로 이런 것에 소요하는 시간을 갖지 않다 보면 - 이에 대해 생각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처음에는 100%, 150% 이에 동의하고 그렇게 살려고 생각하더라도 점점 더 현실, 혹은 일상에 집중하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는 둘 사이에 간극이 벌어져도 이를 느끼지 못한다. 그리하여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위한 선택보다는 일상을 위한 선택을 하게 되고, 삶의 핵심적인 요소가 '행복하고 충만한 삶'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소요의 부재와 그 영향
그러다 보면 점점 더 충만하고 행복한 삶에서 멀어지게 되고, 스트레스와 부정적 사이클에 갇히게 된다. 지금 내가 느끼는 것들이 그렇다. 물론 아직 큰 스트레스나 부정적 감정을 받는 건 아니지만 이전만큼 현실에 충만한 느낌은 결코 아니다.
이 자체로는 틀렸다거나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이런 과정을 통해 '충만한 삶'에서 멀어지고 점점 일상에 치여 스트레스를 받아가는 감정을 느끼고 있고, 이를 피하고자 한다. 나에게는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게 정말 중요한 요소이기에 (그리고, 이런 노력들로 조금씩 그렇게 살 수 있다고 믿기에) 이런 과정을 거쳐 조금 더 충만한 삶을 살아가게끔 노력하는 것이다.
어쩌면 여행이 끝나고 (특히 한국에 돌아와서) 느낀 기분이 이런 것이 아니었나 싶다. 혼자 여행할 때에는 굳이 의도적으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이런 '소요하는' 시간들이 많이 있었다. 돌이켜 보면 여행을 할 때에도 이런 '소요' 시간을 보내지 못할수록 현재에 충만한 삶을 살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굳이 시간을 내어 카페에 가고, 회고하는 시간을 가졌던 듯하다.
소요 시간에 대한 가설과 실험
그래서 앞으로 1-2주 동안(20일 - '슬찬과수원' 프로젝트 활용) 매일 이 '소요'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한다. 나의 가설은 다음과 같다:
매일 '소요'하는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도 일상의 충만함을 더 잘 느낄 수 있게 된다.
실험 방법
- (별다른 목적이나 특정한 과정, 방법론 없이) '소요하는' 시간만을 가짐. 특별한 다른 노력이나 삶의 충만함을 개선하려는 다른 시도는 하지 않는다.
- 특별히 정해진 시간과 장소는 없고, 얼마나 해야 하는지 또한 정해놓지 않는다. 다만 스스로 '만족'(*이 정도면 소요하는 시간을 가졌다*)하는 정도를 그 기준으로 둔다. 지금까지는 적게는 10-20분, 많게는 한 시간 가까이 적어보았다.
- 정신적 소요: 인생, 삶 - 특히 행복, 충만 - 에 대해서 생각하고 이를 적어보기
- 일상의 충만함(richness): 매 순간을 감사하게, 충만하게 느끼는 마음
20일 동안 이 실험을 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해오던 '슬찬과수원'(20일간 무언가를 해서 루틴으로 만들기) 프로젝트에 녹여내기 위해서이다. 만약 효과가 좋다면 이를 여러 번 반복해 매일의 루틴으로 만드는 게 궁극적인 계획이다.
가설이 맞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더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매일 소요하는 시간에 적은 내용과, 이에 따라 달라지는 나의 생각과 감정을 기록하고, 20일(혹은 더 짧거나 긴 시간) 이후에 느낀 바를 솔직하게 공유하겠다.
소요 3일차 - 마음의 풍요를 찾아서 feat.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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