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Idea/행복

당신의 마음은 얼마나 부자인가요?

seul chan 2025. 3. 20. 13:34

 

인류의 역설적 발전

과거에 인간은 수십만 년 동안 이렇게 살아왔을 것이다.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현재 생존을 위해서만 살아간 인류는 '행복'했을까? 어쩌면 행복은 그들에게 너무 고차원적인 생각이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들은 '충만'했을까? 그렇다고 생각한다. 수십만 년이 지난, 농업과 문명, 산업과 기술이 발전한 지금 인류가 하는 대부분의 고민과 걱정, 스트레스와 부정적 감정은 그때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인류의 발전은 참 역설적이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았을 때 (지난 2천 년간, 그리고 특히 지난 200년간) 엄청난 발전이 있었다. 농업혁명으로 수렵과 채집에서 벗어나고, 산업혁명으로 부를 이루었다. 전기는 밤을 정복하게 해 주었으며 디지털은 물리적인 한계를 벗어나게 해 주었다. 지금은 AI 특이점을 앞두고 있고, 또 얼마나 큰 발전과 변화가 인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집단으로서의 인류와 개인으로서의 인간

그래서 집단으로서의 '인류는' 얼마나 진보했는가? 이 질문에 대부분은 매우 진보했다고 답할 것이다. 수명의 한계를 늘리고, 식량의 부족함을 없애고, '모든' 관점에서 이전보다 풍요로워졌다. 이전 인류의 불행함, 그 원천을 99% 이상 해소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 개인으로서의 '인간'은 얼마나 나아졌는가? 이는 앞선 질문보다는 답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나아지다'를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이 정의와 기준이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인간 개개인의 나아짐을 '얼마나 더 행복하고 충만한지 - 인간 개인이 느끼는 긍정적인 감정과 기분(행복, 만족, 충만, 즐거움, 자극 등)의 총합이 얼마나 늘거나 줄었는지'로 생각한다.

그리고 얼마나 나아졌는지에 대한 대답에 '맞다'라고 답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아니다, 더 나아지지 않고 후퇴했다'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수십만 년 전과 지금의 인간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느냐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인류가 얼마나 진보했을까?'라는 이전 질문에서는 그런 의문이 들지 않는다. 왜? 우리가 확고하고 명료하게 '진보하였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질적 진보와 정신적 진보의 불균형

인류는 수십만 년 동안 어마어마한 '기술적 진보'를 이뤄냈고, 이를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다른 용어로 '물질적 진보'라고 표현하겠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인간의 정신적 진보는 얼마나 일어났을까?

사고와 이성이 생겨나고, 철학이 생겨나는 등을 '정신적 진보'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나는 '정신적 풍요'의 기준에서 생각하고자 한다. 물질적으로, 기술적으로 인간은 아주 풍요로워졌다. 이전의 수치를 10이라고 생각하면, 지금은 십만, 백만을 넘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요로워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신적인 풍요로움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고, 오히려 후퇴하였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마음, 그 풍요로움에 대하여

'인간의 마음'이라는 다소 불명확하고 이상한 단어가 공감되지 않을 수 있다. 집단적인 '인류'의 관점에서 이는 상당히 모호하고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는 명확하다. 인류의 총합을 인류 전체의 기술과 물질의 합뿐만이 아닌, 개개인의 모든 삶의 합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개개인의 삶을 이루는 건 개인의 마음, 혹은 정신. 그리고 평생에 걸쳐 개인이 느끼는 기분과 감정, 생각 등의 합이라고 볼 수 있다. 신체와 동떨어진 어떤 독립적인 '자아'를 얘기하는 건 아니다. 그저 인간의 신체, 특히 뇌에서 받은 자극이 특정 과정을 거쳐 생겨나는 모든 '마음' 활동의 합. 이게 인류의 역사가 나아가면서 더 풍요로워졌는지를 묻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행복, 만족, 의미, 가치 등 다양한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한다. 어떻게 표현하든지, 나는 이것이 더 풍요로워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행복과 물질적 풍요로움의 관계

이는 객관적인 수치가 아니라 개개인 간의 상대적인 수치이기 때문에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연구 결과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100년 전보다 지금이 더 행복할까? 대부분의 연구 결과는 그렇지 않다고 보여준다. 기술적, 물질적 풍요로움이 결코 행복, 마음의 풍요로움을 자동으로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개인을 놓고 보아도 마찬가지다. 근 20-30년 동안, 그리고 최근 10여 년 동안 기술의 발전은 어마어마했다. 물질적 풍요로움도 엄청나게 증가했다. 그렇다면 개인의 마음의 풍요로움도 비례하게 증가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실제로 마음의 풍요는 줄었다고 볼 수 있는 지표들이 많다. 이는 단순히 풍요의 불균형 문제가 아니다. 풍요가 균형 있게 분배되었다고 하더라도 결코 마음의 풍요로움은 자동으로 증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차원의 것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인 현대의 풍요

지금 인류 모두가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얻는 것은 과거보다 훨씬 용이해졌다. 더 먹는 것보단 덜 먹기 위해 노력하고, 생존을 위해 지방을 찌우기보다는 흡수를 못하게 하는 약이 '기적의 약'으로 불리고 있다. 마치 SF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가 아닌가?

지금의 방향으로는 마음의 풍요로움을 결코 달성할 수 없다. AI가 나온 뒤에는 더 그럴 것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정신적 공허함은 더 커질 수 있다.

마음의 풍요를 위한 노력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음의 풍요를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인류가 물질적, 기술적 풍요를 위해 노력한 만큼 해야 한다. 얼마나 걸릴지,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지만, 수십만 년 동안, 수천 년 동안, 수백 년 동안 인류의 기술과 물질이 진보하였듯이 인류의 정신과 마음 또한 진보하고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인류 역사 전체를 관통하진 못했지만, 이를 위해 노력해온 개인들, 혹은 집단은 아주 많았다. 이는 종교, 철학, 학문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그들은 마음의 풍요로움, 진정한 행복과 충만함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그것을 얻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왔다.

지금까지는 인류에 대한 얘기였지만, 사실은 '나 자신'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다. 결국 이 마음의 풍요는 집단지성보다는 '개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깨달음들이 쉽게 전달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깨달음'을 얻거나 마음의 풍요를 이룬 소수의 생각이 전달되지 못하고, 이는 물질적, 기술적 진보와 다르게 인류 전체의 진보로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결론은 무엇인가? '이제는 마음의 풍요를 쫓을 때'라고 답하고 싶다. 그리고 인류 전체의 관점이 아닌, 개인의 관점에서 말이다. 마음의 풍요 - 행복, 충만 - 을 위해 살아가는 법을 연습하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개개인의 답을 찾는 과정이 삶이라고 생각한다.

물질과 기술에서 벗어나자는 게 결코 아니다. 이것들이 어떻게 마음의 풍요에 도움이 되는지, 혹은 그 반대인지를 인식하고, 그렇다면 이를 어떤 식으로 활용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우리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마음의 풍요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이 진정한 균형이고, 진정한 진보가 아닐까?

매일 소요하고, 매일 방황하며, 이 질문들에 대한 내 답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고, 그 여정이 바로 삶이다.